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송유근 논문 표절 사건 (문단 편집) ==== 제도권 교육에 대한 불신 ==== 대한민국에선 [[토머스 에디슨]]이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의 일부 인물의 일화에서 나오는 '정규 학교를 자퇴했거나 멸시하였으나 본인 특유의 천재성을 발휘하여 성공' 같은 사례를 들어서 이들을 '제도권 교육에 맞선 풍운아' 정도로 인식하거나, 나아가 특출한 영재는 학교에 적응하기 힘들다고 곡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대중들의 생각과는 달리 '''과학사에 이름을 남긴 유명 과학자들의 절대 다수는 제도권 교육 과정을 착실히 이수했고, 학교 성적 역시 엄청나게 좋았던 사람들이다.''' 일단 토머스 에디슨은 위인 여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좀 있을 뿐 아니라, 설령 위인으로 쳐준다고 하더라도 과학자가 아닌 사업가로서 업적을 세운 인물이다.[* 에디슨의 부정적인 면을 상세히 묘사한 캐릭터가 바로 [[페그오]]의 [[토머스 에디슨(Fate 시리즈)|대통왕 에디슨]]이다. 해당 문서 참고.] 물론 에디슨은 사업가로서 역사에 이름을 남길만한 대단한 업적을 세운 건 분명하고, 이는 충분히 칭송받을 만한 일이다. 현대로 비교하자면 [[마크 저커버그]]나 [[스티브 잡스]]가 많은 사람들의 추앙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당연히 송유근은 이런 사람들과 비교할 수가 없다. 성공하는 것과 과학적인 업적을 내는 것은 별개이기 때문이다. 뭣보다 송유근은 저런 사업적인 성공을 거둔 바도 전혀 없다. 또한 아인슈타인의 경우 정규 학교를 그만둔 것은 학습 부진이 아니라 당시 군국주의가 팽배하여 군대식 교육을 강요한 독일의 김나지움 생활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었고, 이후 상대적으로 훨씬 자유로운 스위스에서 멀쩡히 학업을 마치고 ~~연애도 하면서~~[* 이 때 동료 연구자이자 훗날 첫 번째 부인이 되는 밀레바 마리치를 만났다. 자세한 것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문서 참고.] 대학교까지 졸업했다. 낙제점을 받았다는 루머가 퍼져 있는데 이는 스위스의 학점 표시 방식[* 숫자가 1.0에 가까울수록 높다. 즉 [[기수]]가 아닌 [[서수]]인 셈.]을 잘못 이해해서 생긴 해프닝이고, 아인슈타인이 대학생 시절 낙제한 과목들은 그저 본인이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본업인 물리학만큼은 대학생 시절부터 천재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근/현대 물리학사상 제도권 교육 과정을 거치지 않은 네임드 물리학자는 [[마이클 패러데이]]나 [[올리버 헤비사이드]] 정도밖에 없다. 그러나 헤비사이드는 16세까지는 학교를 다녔으며, 학비가 없어서 고등 교육과정을 밟지 못한 것뿐이다. 그리고 이것이 결국 자신의 연구에 발목을 잡아서 직장도 그만두고 과학과 수학을 공부해야 했다. 즉, 교육 과정은 이탈했지만 재능과 흥미는 유지되었던 케이스로 학교 밖에서 엄청난 양의 공부를 계속했기에 이런 업적을 남기는 게 가능했던 것이다. 패러데이는 자신의 연구를 수학적으로 체계화하지 못했는데, 패러데이가 활동하던 시기에는 맥스웰이 수식화를 위해 사용한 쿼터니안(사원수)도, 쿼터니안을 밀어내고 현대 전자기학에 사용되는 벡터 미적분학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유가 정규 교육과정을 못 밟았기 때문은 아니며, 맥스웰이 20개로 표현한 복잡하기 그지없는 맥스웰 방정식을 4개로 요약한 헤비사이드와 비교하면 그냥 패러데이가 수학에 약했던 것이다. 이는 제도권 교육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재능과 노력이 있다면 업적을 남길 수 있다는 의미지 '''천재에게 정규 교육과정은 낭비'''라는 사례로 보기는 힘들다. 벡터 공간의 개념을 창안한 [[https://ko.wikipedia.org/wiki/%ED%97%A4%EB%A5%B4%EB%A7%8C_%EA%B7%B8%EB%9D%BC%EC%8A%A4%EB%A7%8C|헤르만 그라스만]]은 [[베를린 대학교]]의 신학 전공자이기는 하지만, 그라스만이 재학할 당시의 [[베를린 대학교]]는 중세 대학 체제를 따르고 있었고, [[3학4과]]를 이수하고 본과(신학, 의학, 법학)에 진입하는 구조였다. 신학을 전공했다 하더라도 기초적인 자연과학 소양은 있었다고 봐야 한다. 또한 일반적으로 3학4과 성적이 가장 좋은 학생이 신학을 전공했고, 고전 신학은 고도의 [[형식논리]]를 학습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결국 그라스만이 대학에서 받은 신학 교육이 그의 수학적 사고를 기르는 데 도움을 주었다 볼 수 있다. [[윈스턴 처칠]]의 경우는 기숙학교에서 밤에 주기적으로 선배들이 군대처럼 후배들을 모아서 기합주면서 두들겨패거나 갈구는 문화 같은 게 있었고 그걸로 스트레스를 받아 중증 우울증과 실어증에 걸려서 학교를 한동안 휴학한 경력이 있지만, 결국 치료하고 다시 학업을 이어나갔고 성공했는데, 삼수를 할만큼 성적이 아슬아슬했지만 결국 본인힘으로 입학시험도 졸업시험도 합격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학교 부적응'''을 영재성의 한 필요조건으로 '''착각'''하고 있다. 물론 한국의 '''지나친''' 입시위주 교육이 무한 경쟁을 조장하는 등 비판도 많지만, 어쨌든 기본적인 틀을 만드는 건 맞다. 이 기본적인 틀에서 영재성이 발휘되는 거지, 기본적인 틀이 없다면 영재성이 발휘될 수가 없다. 흔히들 어릴 때부터 특출난 재능을 보이는 신동들을 보면, '한국을 떠나야 한다'든가 '한국에서 인생 망치지 말고 외국으로 떠나라'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데, '''예체능이나 기타 정규 교육과정에서 다루지 않을 법한 재능'''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맞는 부분이 있다. [[영재 발굴단]] 프로에서는 이런 아이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런 경우라면 분명히 제도권 교육 과정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송유근처럼 과학과 수학을 토대로 연구자로서의 재능을 보이는 케이스라면 오히려 꽃피웠으면 꽃피웠지 제도권 교육 과정에 본인의 재능이 죽을 일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현대 과학사에 족적을 남긴 많은 위인들이 그 나라의 제도권 교육을 충실히 이수했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물론 어느 정도 연구를 진행하다 보면 대한민국의 기초 과학 멸시와 이로 인한 여러 인프라의 부재로 인해 한계를 느끼겠지만, 이는 연구자로서 어느 정도 성장한 다음의 이야기이고 기초적인 지식을 쌓기에는 무리가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